그후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다. 목적도, 맥락도 없이 그저 인상 깊다고 느낀 낱말들이었는데, 그중 그녀가 가장 아꼈던 것은 ‘숲’이었다. 옛날의 탑을 닮은 조형적인 글자였다. ㅍ은 기단, ㅜ는 탑신, ㅅ은 탑의 상단. ㅅ-ㅜ-ㅍ이라고 발음할 때 먼저 입술이 오므라들고, 그 다음으로 바람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새어나오는 느낌을 그녀는 좋아했다. 그리고는 닫히는 입술. 침묵으로 완성되는 말. 발음과 뜻, 형상이 모두 정적에 둘러싸인 그 단어에 이끌려 그녀는 썼다. 숲. 숲.
희랍어 시간 | 한강 저
몇일 전에 읽은 부분인데요
저도 '숲' 라는 단어가 너무 많이 좋아졌습니다 ㅎ
출근길에 와이프와 이야기를 나누며
ㅅ-ㅜ-ㅍ
입술쭉 빼고
따라 발음하며
한 참을 웃었네요
ㅅ
ㅜ
ㅍ
어떻게 이런 발견을, 이런 표현을, 이런 즐거움을
참 존경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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