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한 남자의 일생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도 삶의 의미, 사랑, 일, 관계 등 보편적인 주제에 대해 깊은 성찰을 던지는 작품
[ 독서 토론 주제 ]
1. 윌리엄 스토너의 삶과 정체성
- 스토너의 삶은 성공적인 삶이었을까요, 아니면 실패한 삶이었을까요? 혹은 그저 "살아낸" 삶이었을까요? 각자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요?
- 스토너가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에서 내린 선택들(대학 진학, 결혼, 학문 연구 지속, 캐서린과의 관계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 스토너는 왜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거나 상황을 바꾸려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그의 내향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 소설의 마지막 문장, "그는 무엇을 기대했던가?"라는 질문에 대해 각자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요? 스토너 자신은 그 질문에 답을 찾았을까요?
- 스토너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문학, 캐서린, 그레이스, 혹은 그 외의 다른 것이었을까요?
2. 사랑, 결혼, 그리고 관계의 본질
- 스토너와 이디스의 결혼 생활은 왜 불행했을까요? 두 사람의 성격, 가치관, 소통 방식 중 어떤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느 한쪽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보시나요?
- 이디스라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녀의 행동과 심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녀 역시 시대나 환경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을까요?
- 스토너와 캐서린의 사랑은 그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요? 그들의 관계가 짧게 끝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이 스토너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 스토너와 딸 그레이스와의 관계는 어떠했나요? 스토너는 좋은 아버지였을까요? 그레이스의 삶에 스토너와 이디스의 관계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 소설 속 다른 인물들(아처 슬론, 데이브 마스터스, 홀리스 로맥스, 고든 핀치 등)과의 관계는 스토너의 삶과 성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시나요?
3. 일과 열정, 학문의 세계
- 스토너에게 문학 연구와 가르치는 일은 어떤 의미였나요? 단순한 직업 이상의 가치, 혹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였을까요?
- 대학이라는 공간과 그 안에서의 권력 관계(특히 로맥스와의 갈등)는 스토너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이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요?
- 스토너는 자신의 일에서 어느 정도의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꼈을까요? 그의 학문적 여정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과 가장 좌절스러운 순간은 언제였다고 생각하시나요?
-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일에 부여하는 의미와 스토너가 자신의 일에 가졌던 태도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4. 시대적 배경과 개인의 운명
- 20세기 초중반 미국의 사회상(가난한 농가 출신,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경제 대공황 등)은 스토너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 스토너의 고독과 소외감은 개인적인 성향 때문일까요, 아니면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까요?
-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당시의 가치관(결혼, 여성의 역할, 사회적 성공 등)은 현대의 가치관과 어떻게 다른가요?
5. 소설의 메시지와 문학적 성취
- 작가가 스토너라는 인물을 통해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소설의 문체나 서술 방식 중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 담담하고 절제된 문체, 객관적인 시선 등)
- "스토너"가 출간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자신의 삶이나 주변을 돌아보며 새롭게 생각하게 된 점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존 윌리엄스가 스토너라는 인물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 평범한 삶의 가치와 존엄성: 스토너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 극적이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좌절과 실망, 오해 속에서 조용히 흘러갑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평범하고 어쩌면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삶 속에서도 한 인간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고, 사랑하고, 고뇌하는 과정을 통해 그 자체로 존엄하며 가치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성공이나 성취라는 사회적 잣대와는 다른, 개인의 내면적 진실성과 성실함에 주목하게 합니다.
- 일과 사랑에서의 진정성 추구: 스토너는 자신이 사랑하는 문학 연구와 가르치는 일에서만큼은 타협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비록 그것이 외부적인 성공이나 인정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때로는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려 합니다. 캐서린과의 사랑 역시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렵고 짧게 끝나지만, 그의 삶에서 가장 진실된 순간으로 그려집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외부의 평가나 결과보다는 과정에서의 진정성과 순수한 열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과 소통의 어려움: 스토너는 아내 이디스와의 관계, 딸 그레이스와의 관계, 심지어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깊은 소통의 어려움을 겪으며 고독감을 느낍니다. 이는 단순히 스토너 개인의 문제를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근원적인 외로움과 타인과의 완전한 이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 삶의 비극성과 수용: 스토너의 삶은 많은 부분에서 그의 의지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그는 종종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려 하기보다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삶의 본질적인 비극성과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조용히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의 의미를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문장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 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 나자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금요일에 매스터스와 핀치를 만나 자신은 독일군과 싸우러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스토너는 슬론의 말이 모두 끝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가 막 일어서려는 순간 슬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가 느리게 말했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인류가 겪은 전쟁과 패배와 승리 중에는 군대와 상관없는 것도 있어. 그런 것들은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할 때 이 점을 명심하게.”
그가 침실로 돌아왔을 때 이디스는 턱까지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굴은 천장을 향했고, 눈은 꼭 감았으며, 이마에는 가느다란 주름이 한 줄 잡혀 있었다. 스토너는 마치 잠든 그녀를 깨우지 않으려는 것처럼 조용히 옷을 벗고 침대로 들어가 그녀와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한동안 욕망을 품은 채 누워 있었다. 욕망은 오로지 그에게만 속하는 별개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기분의 피난처를 찾듯 이디스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몸에 손을 올리자 잠옷의 얇은 천을 통해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육체가 느껴졌다. 그가 그녀의 몸 위에서 손을 움직였지만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주름살이 더 깊어졌다. 그가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었지만 침묵뿐이었다. 그는 서투르지만 부드럽게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갔다. 그가 그녀의 부드러운 허벅지를 만지자 그녀가 고개를 홱 옆으로 돌리더니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러고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일이 끝난 뒤 그는 그녀 옆에 누워 사랑이 담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제 그녀는 눈을 뜨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 눈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갑자기 그녀가 이불을 홱 젖히더니 재빨리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 불이 켜지고, 그녀가 큰 소리로 고통스럽게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녀를 부르며 욕실로 갔지만 욕실 문이 잠겨 있었다. 그가 다시 그녀를 불렀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침대로 돌아가 그녀를 기다렸다. 침묵 속에서 몇 분이 흐른 뒤 욕실의 불이 꺼지고 문이 열렸다. 이디스가 욕실에서 나와 뻣뻣한 걸음으로 침대로 돌아왔다.
“샴페인 때문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한 잔만 마실걸 그랬어요.”
그녀는 이불을 끌어올려 덮고 그에게 등을 돌렸다. 잠시 후 잠든 그녀의 숨소리가 고르고 묵직하게 변했다.
어머니가 말하는 동안 스토너의 눈에 어머니의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어머니도 이미 죽어버린 것 같았다. 어머니의 일부가 남편과 함께 저 상자 속으로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제야 어머니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여윈 얼굴이 퀭하게 보였다. 피부가 늘어져서 가만히 있을 때조차 얇은 입술 사이로 치아 끝이 살짝 드러났다. 걸을 때는 무게도 힘도 없는 사람 같았다. 그는 뭐라고 중얼거리고는 거실 밖으로 나가 어렸을 때 자신이 쓰던 방으로 가서 그 황량한 풍경 속에 서 있었다. 눈이 뜨겁고 건조했다.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로맥스는 스토너와 악수하며 그가 쓰고 있는 책에 대해 묻고는 책이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등받이가 곧은 의자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있는 이디스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파티에 대해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조용한 충동이라도 일었는지 살짝 몸을 수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디스의 손이 그의 머리를 향해 가볍게 뻗어 올라갔고, 두 사람은 다들 지켜보는 가운데 잠시 그 자세를 유지했다. 스토너는 그렇게 정숙한 키스를 본 적이 없었다. 흠잡을 데 없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키스였다.
스토너는 문까지 손님들을 따라 나가서 손님들이 계단을 내려가 포치의 불빛을 벗어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주위에 내려앉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깊이 숨을 들이쉬자 선뜩한 찬 기운이 그에게 활기를 주었다. 그는 내키지 않는 듯 문을 닫고 돌아섰다. 거실은 비어 있었다. 이디스는 벌써 2층으로 올라간 모양이었다. 그는 불을 끄고 어질러진 거실을 가로질러 계단으로 향했다. 벌써부터 집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는 보이지 않는 난간을 잡고 그것에 의지해 계단을 올랐다. 계단 꼭대기에 다다르자 앞이 보였다. 반쯤 열린 침실문에서 새어나온 빛이 복도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복도를 걸어 침실로 들어가는 동안 바닥 널이 삐걱거렸다.
이디스의 옷이 침대 옆 바닥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고, 이불도 아무렇게나 젖혀져 있었다. 이디스는 주름 하나 없는 하얀 침대보 위에 알몸으로 누워 빛을 받고 있었다. 알몸으로 널브러진 그녀의 모습이 느슨하고 방탕하게 보였다. 게다가 연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윌리엄은 침대로 가까이 다가갔다. 이디스는 곤히 잠들어 있었지만, 빛의 장난 때문에 살짝 벌어진 입술이 소리 없이 열정과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한참 동안 선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련한 연민과 내키지 않는 우정과 친숙한 존중이 느껴졌다. 또한 지친 듯한 슬픔도 느껴졌다. 이제는 그녀를 봐도 예전처럼 욕망으로 괴로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예전처럼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이는 일도 다시는 없을 터였다. 슬픔이 조금 가라앉자 그는 그녀의 몸에 부드럽게 이불을 덮어주고 불을 끈 뒤 그녀 옆에 누웠다.
다음 날 아침 이디스는 아프고 지친 모습이었다. 그녀는 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윌리엄은 집을 청소하고 딸을 돌봤다. 월요일에 로맥스와 마주친 그는 파티 날 밤의 분위기에서 이어진 따스함을 담아 그에게 말을 건넸다. 로맥스는 차가운 분노를 표출하듯 빈정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날의 파티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마치 스토너를 자신에게서 떼어놓을 적의를 찾아내서 꼭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이디스가 앙심을 품은 듯한 목소리를 이끌어내서 냉담하게 말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까지도 가난하게 살았으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지 못할 이유가 없죠. 일찌감치 생각해 보지 그랬어요? 그 일이 어디로 이어질지. 불구자처럼 무능력해지겠죠.”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바뀌더니 그녀가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거의 애정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신한테는 그런 일들이 아주 중요하죠. 그러니 달라져봤자 얼마나 달라지겠어요?”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두 사람 모두 수줍어하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갔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물러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에게 억지로 자신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을 보호해 주던 과묵함이라는 막이 한 층씩 떨어져 나가서 마침내 두 사람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지극히 수줍어하면서도 서로에게 무방비하게 마음을 열고 함께 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지는 관계가 되었다.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鄕愁)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지금까지 자신은 타인의 몸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자아와 그 자아를 담고 있는 몸을 항상 분리시켜 보았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신은 타인에게 진정한 친밀감이나 신뢰나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최종적인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것이 그해 여름에 두 사람이 배운, 이른바 ‘기존 관념’의 기이한 점 중 하나였다. 어렸을 때 두 사람은 마음과 몸이 별개의 것이며 서로 적대적인 관계라고 배우며 자랐다. 그래서 별로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면 나머지 하나를 희생하는 수밖에 없다고 당연한 듯이 믿고 있었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강화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진실을 깨닫기도 전에 체험이 먼저 찾아왔으므로, 이 새로운 발견이 오로지 두 사람만의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이처럼 ‘기존 관념’이 기이하게 달라진 사례들을 모아 보물처럼 간직해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기존 관념을 고수하는 세상으로부터 두 사람을 분리시키는 데 일조했다. 또한 두 사람이 야단스럽지는 않지만 감동을 느끼면서 서로에게 더 가까워지는 데에도 일조했다.
‘기존 관념’에 따르면, 이른바 그의 ‘불륜’이 진행되면서 가족과의 관계가 꾸준히 악화되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꾸준히 나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여전히 ‘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곳을 비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이디스나 그레이스와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는 이디스에게 애정과 흡사한 묘한 호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가끔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일들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다. 그해 여름에 이디스는 심지어 유리로 둘러싸인 일광욕실을 청소해 주고, 그동안 바깥 날씨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망가진 곳들을 수리하고, 침대 겸용 소파를 놓아주기까지 했다. 그 덕분에 스토너는 이제 거실 소파에서 잘 필요가 없어졌다.
두 사람은 빛이 절반밖에 들지 않는 세상에 살면서 자신들의 좋은 점들을 드러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깥세상, 변화와 지속적인 움직임이 있는 그 세상이 비현실적인 거짓 세상처럼 보였다. 두 사람의 삶은 이 두 세계에 철저하게 나눠져 있었다. 이렇게 분열된 삶을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았다.
“모르겠어요.” 아이가 말했다.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전 골칫덩이가 되고 싶지 않아요.”
아이는 그를 다시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이가 말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마침내 스토너가 말했다. “뭐, 걱정 마라. 다 잘될 거야.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네가 원하는 일이 무엇이든, 다 잘될 거야.”
“네.” 그레이스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의자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버지랑 저, 이제는 이야기를 할 수 있네요.”
“그래.” 스토너가 말했다. “이야기를 할 수 있어.”
하지만 그는 초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밑에 그것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강렬하고 꾸준하게. 옛날부터 항상 그곳에 있었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거리낌 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계에 열정을 주었다. 그게 몇 년 전이더라? 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詩)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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